그간 몇번이나 적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상황들을 모두 종합해서 이야기를 풀어보자니 며칠은 걸릴 것 같았고,

몇 문장으로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니 멋도 없고 맛도 없는 그런 밋밋한 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이틀 미루다 보니 이대로 가다간 내가 가진 특별한 경험들이 영영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기억의 입장에서 보면 나를 무심한 기억의 주인이라 할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공들여 만들어준 나의 웹페이지를 빌려 그간 흩어져 있던 나의 ‘결혼 일기’를 한알 한알 꿰어보려고 한다.

 

Part 1 . 일본에서의 결혼.

2016.4.23 봄볕이 따스했던 날.

아침부터 슈짱과 함께 예약해 놓은 근처 미용실에 갔다.

나는 올림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슈는 깔끔하게 머리를 손질하는 정도로 했다.

교회에서 하는 결혼 집회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과하지 않아야 했다.

메이크 업 하는 언니한테 몇번이나 연하게 해달라고 했다. 눈썹도 너무 진해서 한번 지우고 다시 했다.

크리스찬이 많지 않은 일본에서 교회에서 예배 형식으로 하는 결혼은 사람들에게 생소했다.

결혼식도, 피로연도 아닌 ‘결혼 집회’라는 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결혼 집회 한시간 전쯤 가서 회장 정리를 돕고 하객들을 맞이했다.

나는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오시는 분들은 거의 슈짱이 알고지낸 동료와 형제자매님들이었다.

꽃장식 하나 없는 소박한 결혼 집회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와서 환한 얼굴로 집회를 장식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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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장식품은 다른 것 아닐세, 오직 사랑하는 자 그분이 장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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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도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은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주셨다.

슈 형제 어머님의 장례식과 대학원 입학식 같은 굵직 굵직한 일들이 겹치면서 결혼 준비를 제대로 시작한 건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지만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우여곡절끝에 결혼 집회를 열 수가 있었다.

식순을 정하고, 누가 사회를 볼 건지, 누가 메시지를 전할 건지, 간증은 누가 할지, 접수대에서는 누가 하객을 맞이할지. 찬송은 어떤 곡으로 할지. 회사 동료들은 어디에 앉히는게 좋을지.

음식은 무엇을 낼지. 케잌은 어디서 주문할지. 피로연장으로 가는 차량은 어떻게 안배할지.

교회 결혼 집회는 웨딩 플래너가 없다. 스드메 패키지도 없다. 컴퓨터를 켜고  청첩장을 만드는 일부터, 정말 제로’0’부터 해나가야 했다.

여기에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100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부탁해야 할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어렵게 부탁했을때 누구도 거절하는 사람도, 애매한 답변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모두가 흔쾌히 승낙하셨고, 심지어 부탁받지 않아도 자원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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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ホバはわが牧者、緑の牧場へ、憩いの泉へとわれら導かる 命の日の限り、良きものまた慈愛がわたしを追いかける。…わたしは永遠に主の家に住む。わたしは宴席を設けます。’

‘여호와는 나의 목자,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우리를 이끄시네. 생명의 연한동안 , 그분의 자비와 사랑이 나를 쫓아오네. 나는 영원히 주님의 집에 사네. 나는 연회를 베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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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았지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건 이렇게 해야된다, 저렇게 해야된다. 조언삼아 하는 말들이 어깨를 짓눌렀다.

알아서 척척 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당사자와는 상의없이 결정하는 일들에 상처받았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특성으로 구분짓는것은 경계해야하지만, 일본 사람들에 피에는 뿌리깊은 원리원칙주의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튼, 작은 실망과 많은 감사가 있었으니 대체로 감사했다고 볼 수 있겠다.

결혼집회는 오후 2시 부터 두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집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너무나 힘들어서 빨리 오늘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집회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많은 축하의 말과 선물이 오가면서 신부가 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느껴졌다.

집회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힘들었던 기억은 봄볕에 다 증발하고 따뜻한 온기만 남았다.

내 바로 앞, 그러니까 하객석의 맨 앞자리에는 신랑신부의 가족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앉았다.

결혼 집회는 사실 ‘결혼 복음 집회’의 줄임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만 결혼식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통해 주님을 알고 접촉하길 원하는 숨은 의도가 있다.

짧게나마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차장님, 과장님 및 사원 두분이 오셨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마츠도는 아마 이름도 들어본적이 없는 외진 곳일 텐데, 먼곳에서 발걸음을 해주신게 감사하기만 했다.

역에서부터 구두를 신고 골목길을 걸어오셨기 때문일테지만, 처음 인사때부터 얼굴이 더운 기색이 역력했다.

죄송하고, 감사했다.

지금도 그분들이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집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와타나베 형제님의 결혼에 관한 메시지가 끝나고, 지체들의 간증과, 찬송이 하나씩 마무리 되어갔다.

가족들, 동료들, 형제자매들 순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집회 공간 한쪽에 긴 다과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조각케잌을 100개나 주문했는데, 한 입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권하거나 남겨놓지 않았다.갑자기 슬퍼지네?)

마지막으로 집회소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내 무릎위에는 다이치짱이, 슈형제의 무릎 위에는 마이짱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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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rsed in Thy Love, fresher than morning dew. Here I’m kept away from every earthly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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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